AI는 교사 업무의 많은 부분을 도울 수 있다. 하지만 도울 수 있다는 말과 대신해도 된다는 말은 다르다. Project Archipelago를 만들면서 가장 자주 되돌아오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교사 업무에서 AI는 어디까지 들어와야 하는가.

내 기준은 비교적 단순하다. AI는 자료를 정리하고 초안을 만들고 빠뜨린 관점을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을 어떻게 볼 것인지, 어떤 표현을 남길 것인지, 어떤 조언을 할 것인지에 대한 최종 판단은 교사에게 남아야 한다.

이 선을 흐리면 도구는 편해 보이지만 위험해진다.

초안은 판단이 아니다

생활기록부 문장이나 상담 기록을 쓸 때 AI는 빠른 초안을 줄 수 있다. 이 자체는 도움이 된다. 빈 화면 앞에서 시작하는 부담을 줄이고, 반복적인 표현을 정리하며, 교사가 놓친 관찰 지점을 다시 떠올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초안은 판단이 아니다. 학생에게 어떤 강점이 있다고 말할지, 어떤 변화가 의미 있는지, 어떤 표현이 과장인지 판단하는 일은 문장 생성보다 앞선다. AI가 문장을 그럴듯하게 만들수록 이 차이는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교사용 AI 도구는 “완성 문장”보다 “검토 가능한 초안”을 목표로 해야 한다. 교사가 고칠 수 있어야 하고, 근거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하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상담에서 남아야 하는 사람의 몫

상담은 정보 전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자료도 학생의 상황, 성향, 불안, 기대에 따라 다르게 설명해야 한다. 어떤 학생에게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 말이 필요하고, 어떤 학생에게는 조건을 차분히 확인하는 말이 필요하다.

AI는 자료를 비교하고 선택지를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의 반응을 보고 말을 조절하는 일, 지금 어떤 표현을 삼가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 학생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맞추는 일은 교사의 몫으로 남아야 한다.

특히 입시 상담에서는 더 그렇다. 데이터가 있다고 해서 확신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료는 근거가 될 수 있지만, 학생의 선택을 대신할 수는 없다.

도구가 지켜야 할 운영 기준

Project Archipelago의 기능은 이 기준을 따라야 한다. 첫째, 출처를 남겨야 한다. 둘째, 사람이 검토할 수 있는 형태로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셋째, 불확실한 내용을 확정처럼 말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학생 개인 정보와 공개 가능한 자료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 기준은 기능을 느리게 만들 수도 있다. 버튼 하나로 끝나는 경험보다 중간 확인 단계가 많아질 수 있다. 그래도 교육 도구라면 그 느림이 필요하다. 빠른 자동화보다 설명 가능한 작업 흐름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AI가 교사의 일을 모두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도구는 그런 방향이 아니다. 교사가 더 잘 판단할 수 있도록 자료와 초안을 정리하되, 판단의 자리는 비워 두는 도구가 필요하다.

다음 글에서는 이 기준이 왜 블로그 구조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Project Archipelago 본앱과 블로그를 분리한 이유를 정리한다.